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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칼융의 분석심리학에 대하여(2)

칼 융의 분석 심리학에 대하여 적고자 한다.

칼융의 분석심리학에 대하여(2)

 

융은 의식의 중심인 자아가 외적 세계에 적응함과 동시에 내적 세계에도 적응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였다.

자아와 외부 세계가 적응하면서 취하는 여러 가지 행동 양식을 외적 태도 라고 하였으며 동시에 내적 세계에 적응하는 가운데 외적 세계에 대응하는 내적 태도가 생기고 이것을 마음이라고 하였다.  외적 태도나 내적 태도는 일정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외적 인격, 내적 인격이라고 한다. 

 

(1) 페르소나

 

페르소나는 연극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뜻하는 단어이다. 페르소나는 내면의 자아가 취하는 외적 태도로서  사람들이 곧잘 자신의 생각, 자신의 가치관, 자신의 신념,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들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집단적으로 주입된 관념을 말하는 것인데 이러한 이유로 융은 페르소나를 집단정신의 한 단면으로 보았다.

 

페르소나는 나를 위한 나가 아니라 남에게 보이는 나를 더 크게 생각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태도를 취하며 진정한 자기와는 다른 것이다.

'~된 도리 ' 라고 하는 것은 페르소나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집단 공유의 보편적 원칙이기 때문에 그 집단과의 관계가 계속되는 동안 자아는 페르소나를 진정한 자기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페르소나와 자아와의 동일시 가 심해지면 내면 세계가 상실될 수 있다. 즉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되고 그 존재마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 정신으로 하여금 하나의 전체가 되고자 하는 무의식의 작용이 의식의 일방적인 태도를 과보상 하게 되면, 자아 의식의 기능이 정지되고 그로 인해 표출되는 것이 우울증이다. 

하지만 우울 증상이 그것을 통해서 시선을 내면으로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의 그 목적의 의미가 있다. 

페르소나는 마음이 그러한 것처럼 하나의 관계 기능을 한다. 자아를 내면의 무의식과 연결하는 것이 마음이라면 자아를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것이 페르소나이다. 

 

(2) 아니마와 아니무스

융은 인간이란 태어날 때부터 양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했으며 이 주장을  반영한 개념이 바로 '아니마'와 '아니무스'이다. 아니마는 남성의 내부에 있는 여성성, 아니무스는 여성의 내부에 있는 남성성을 의미한다. 

남성성의 속성은 이성이고, 여성성의 속성은 사랑이므로 양성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모두 이성과 사랑을 겸비했다고 볼 수 있다. 

아니마는 비합리적인 감성이며, 아니무스는 비합리적인 의견이다.  부정적인 아니마는 남을 깍아내리는 일을 하며 남성들로 하여금 지적 유희에 사로잡혀 삶의 활력과 자발성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부작용이 있다.  부정적인 아니무스 역시 삶을 파괴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잘 발달된 아니무스는 남성들이 미쳐 보지 못한 지혜의 소스가 되어 추상적 사물에 의해 흐려진 시야에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각각 4단계의 발전 단계를 가지고 있다.

아니마의 첫 단계는 이브,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인 여성이다. 

두번째 단계는 낭만적이고 눈이 즐거워지는 아름다움을 지닌 헬렌,

세 번째 단계는 영적 헌신으로 지양된 에로스, 성모 마리아

네 번째 단계는 거룩하고 순수한 지혜, 사피엔티아 로 표현된다. 

아니무스의 첫 단계는 육체적 영웅, 두번째 단계는 낭만적, 또는 행동적 남성으로 전쟁 영웅의 이미지, 세 번째 단계는 교수나 목사와 같은 '말씀'의 사자이며 네 번째는 종교적 체험의 중개자이며 영적 진리로 이끌어 가는 지혜로운 자이다.

페르소나가 외부 세계와 자아를 연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자아로 하여금 무의식으로 시선을 돌리고 더 깊은 층으로 인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3) 그림자

그림자란 바로 나의 어두운 면, 무의식 측면에 있는 나의 또 다른 나이다. 이것은 동물적인 욕망에 기여하는 원형이다. 자아의식이 강하게 조명될수록 그림자가 짙어지게 마련이다.  그림자는 의식의 뒷면에 있는 열등한 인격과 같은 것이다.

그림자는 의식화될 기회를 잃었으므로 처음에 인식이 될 때는 부정적인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림자는 무의식에 있는 영역이므로 우리가 의식할 수 없지만 그것이 투사될 때 인식되어질 수 있다.

어떤 대상을 보았을 때 이상하게,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왠지, 혐오감과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림자가 투사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4) 자기

무의식과 의식의 통합, 그 사람 전체를 말한다. 요즘은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으로 살 것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무의식과 의식 전체를 말하므로 분열을 발생시키는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방적으로 의식만을 고집하게 되면 결국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며 무의식과 의식의 관계가 상실된다. 그 관계의 상실이 우리가 소위 말하는 마음의 병을 얻었다라고 하는 그 상태이며 자기와의 일치를 통해서 그 병은 사라지게 된다. 자기와의 일치 및 마음의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은 고통을 수반하는 과정으로서 하나의 창조 과정이다. 

 

(5) 콤플렉스

사람들이 보통 얼굴이 굳거나, 창백해지거나, 벌게 지거나, 갑자기 횡설수설하는 등의 행동을 한다면 이것은 콤플렉스의 징후이다.  콤플렉스는 잘 정리된 의식의 질서를 한 순간에 교란시킨다. 

콤플렉스가 자극될 때 보통은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지만 이 콤플렉스가 부정적인 것들과만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융은 콤플렉스를 강조된 심리적 내용 또는 그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심리적인 요소의 일정한 군집으로 정의하였다. 즉 

일반적인 의식상황이나 태도로 상용될 수 없고 의식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는 의식 속의 생물과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